남미는 디지털 노마드에게 색다른 영감을 주는 대륙이다. 자연, 문화, 생활비,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까지 여행자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노마드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전 세계 노마드 커뮤니티 사이에서 조용히 떠오르고 있는 도시는 에콰도르의 쿠엥카(Cuenca)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도시에는 아름다운 식민지풍 건물과 강이 흐르는 고요한 거리, 그리고 깊은 공동체적 분위기가 공존한다. 저렴한 물가, 안정적인 인터넷, 친절한 지역 문화는 쿠엥카를 ‘남미의 보석’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중세 유럽 같은 풍경 속에서 살아보는 경험
쿠엥카에 처음 도착하면 도시 전체가 마치 중세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붉은 지붕의 고풍스러운 건물, 정돈된 돌길, 식민지 시대 성당과 미술관은 현대적인 도시와는 다른 차원의 정서적 여유를 안겨준다. 도시 중심부인 엘 센트로(El Centro) 지역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노마드들이 작업하고 머물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이 도시는 해발 2,5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가 맑고, 사계절 내내 온화한 날씨를 자랑한다. 덕분에 쾌적한 환경에서 집중력 있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다른 남미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음이 적고 안전한 분위기도 큰 장점이다.
거리 곳곳에는 아담한 카페와 예술적인 갤러리, 장인들의 수공예 가게가 있어, 일하는 중간중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풍부하다. 쿠엥카는 단지 인터넷 연결이 좋은 장소일 뿐 아니라, 창의적 감수성과 정서적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도시다. 이는 콘텐츠 제작자나 작가, 디자이너 등 감성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마드에게 특히 유리하다.
부담 없는 물가와 안정적인 생활 인프라
노마드가 도시에 오래 머물 수 있을지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은 바로 생활비다. 쿠엥카는 수도 키토나 과야킬에 비해 생활비가 확연히 낮으며, 다른 대륙의 노마드 도시와 비교해도 상당히 경제적인 도시다.
하숙형 숙소나 공유 아파트는 월 300~500달러 선에서 구할 수 있으며, 인터넷 요금과 공과금도 매우 저렴하다. 하루 식사비는 로컬 식당에서 35달러면 충분하고,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전통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택시나 버스 같은 교통수단도 합리적인 요금으로 이용 가능해 장기 체류에 부담이 없다.
무엇보다 쿠엥카는 외국인 노마드와 은퇴자들을 환영하는 도시로 유명하다. 실제로 많은 북미 및 유럽 출신의 디지털 노마드들이 이곳에 정착하거나 계절별로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위한 병원, 은행, 보험 서비스도 잘 정비되어 있어 외국인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다. 특히 영어가 가능한 서비스 종사자도 꽤 있어, 스페인어가 능숙하지 않은 노마드에게도 진입장벽이 낮다.
코워킹 공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Selina Cuenca’ 같은 글로벌 체인형 공간부터, ‘Nómada CoWorking’, ‘Coworking Cuenca’ 같은 지역 기반 장소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이 공간들은 단순한 업무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종종 개최되는 네트워킹 이벤트나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진정한 커뮤니티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와 문화적 여유, 그리고 연결성
쿠엥카의 또 다른 매력은 그 안에 녹아 있는 문화적 깊이와 공동체성이다. 예술과 음악,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서는 단순히 ‘일하는 장소’ 이상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주말에는 전통 공예 시장이나 문화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안데스 산맥의 풍경 속에서 트레킹이나 온천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쿠엥카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매우 친절하다. 단골이 되면 이름을 기억해주는 카페 사장님, 길을 물으면 정성껏 도와주는 시민들, 때로는 자신의 문화를 설명해주려는 예술가까지, 이곳에서의 일상은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많이 덜어준다.
쿠엥카는 또한 디지털 노마드의 중요한 기준인 연결성(connectivity)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에콰도르 전체가 비교적 작은 나라다 보니, 국내 주요 도시 간 이동이 용이하고, 저가 항공으로 페루, 콜롬비아 등 인근 국가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쿠엥카 자체에는 국제공항이 없지만, 과야킬이나 키토로 이동한 뒤 비행기를 이용하면 다른 남미 지역으로 연결되기도 어렵지 않다.
지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쿠엥카는 노마드가 삶과 일, 여행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도시다. 이곳의 리듬은 빠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따뜻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마치 원래 그곳 사람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그런 도시다.
에콰도르 쿠엥카는 남미 특유의 다채로움과 문화적 품격, 실용적인 생활 조건을 모두 갖춘 도시다. 화려하진 않지만,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탄탄하게 담고 있는 곳. 노마드가 일하면서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곳. 쿠엥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더 많은 노마드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