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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hin 2025. 4. 6.
프랑시스 장 마르셀 풀랑크(프랑스어: Francis Jean Marcel Poulenc, 프랑스어 발음: ​[fʁɑ̃sis ʒɑ̃ maʁsɛl pulɛ̃k], 1899년 1월 7일~1963년 1월 30일)는 프랑스 가곡인 멜로디, 피아노 독주곡, 실내악, 합창곡, 오페라, 발레, 관현악곡을 비롯해 수많은 곡들을 남긴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뿔랑이라고도 알려져있다. 《세 개의 무궁동 (1919)》, 연가곡 《동물시집 (1919)》, 발레 《암사슴 (1923)》, 피아노와 18악기의 《오바드 (1930)》는 신선한 감각과 간결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풀랑크 초기 대표작이다.이후 1930년대부터 많은 가곡을 작곡하여 《가면무도회 (1932)》, 《미사곡 (1937)》, 《인간의 얼굴 (1943)》, 《스타바트 마테르 (1950)》 등 좋은 작품들을 낳았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아폴리네르에 의한 《티레시아스의 유방(乳房) (1944)》, 베르나노스에 의한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1957)》, 콕토에 의한 《인간의 목소리 (1958)》 총 3개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는데, 클로드 드뷔시 이후로 프랑스에 우수한 오페라 작품이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았다.[1] 프랑스 6인조의 일원으로 파리 출신이며 어릴 적부터 모차르트와 드뷔시를 열렬히 사랑하였다고 한다. 초기 작품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스트라빈스키나 사티의 영향도 엿보인다. 풀랑크는 부유한 공장주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가업을 이을 것으로 여겨져 음대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음악을 독학하다가, 피아니스트 리카르도 비네스의 가르침을 받는데 그는 풀랑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의 멘토가 되어준다. 풀랑크는 또한 에릭 사티와도 일면식이 있어 그의 후견 하에 젊은 프랑스 작곡가의 모임인 6인조(프랑스어: Les Six)의 하나가 된다. 풀랑크의 초기작품들은 활발함과 그 특유의 불손함이 특징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 좀 더 진중한 부분이 계발되는데, 1936년을 시작으로 종교음악들이 가벼운 음악들을 대체해나가는 모습에서 이러한 음악적 전환을 엿볼 수 있다. 풀랑크는 또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는데, 특히 성악 고문이었던 바리톤 피에르 베르나크, 소프라노 드니즈 뒤발과 구미를 돌며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이 때를 비롯해 1928년 이후로 많은 녹음을 남겼는데, 축음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1세대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말년부터 큰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주로 해학적이고 가벼운 음악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다 21세기에 들어서 《카르멜회 수녀의 대화 (1957)》나 《인간의 얼굴 (1943)》 등 좀 더 무거운 음악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성악곡들과 합창곡들이 많이 연주되기 시작했다.